하일동 육교 근처에는 오래된 벽돌공장이 있었다. 요즘 벽돌공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 벽돌공장은 아주 높은 굴뚝이 있어서 저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내가 하일동에 살던 당시에는 벽돌공장이 운영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 즉, 망한 벽돌공장이였다. 어린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빈집, 빈공장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다. 나에게도 그랬는데 그 곳에는 벽돌 쌓아놓은 것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고 슬레이트 지붕과 나무 기둥들 그리고 텅빈 공간이 기억난다. 그리고 내가 그 곳을 참 싫어했는데 이유는 그 곳에 여기저기 누군가 싸놓은 똥들이 널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피해다니며 아우~ 똥내 하고 왔다갔다 했다. 내가 그림을 좀 그린다면 그림으로 그렸을 텐데 난 늘 내가 그림을 못그린다는게 아쉽다.
하일동 집은 아직 내게 미스테리한 곳이다. 정확한 구조나 마을의 생김새, 길이 어디로 어떻게 났는지 그런게 희미해서 내 기억이지만 나도 참 궁굼하다. 가만히 그 곳의 지리를 되짚어보면 하일동에서 서울올라가는 길에 해태상이 길 양 옆에 있고 그곳엔 육교가 있었다. 육교근처에서 버스내리면 산길 같은 것을 통해 우리집까지 걸어갈 수 있었는데 그 거리가 약 1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당시 나에겐 상당히 긴 길이였고 난 그길을 따라 버스를 타거나 집에오는게 참 싫었다. 육교에서 집으로 오는길에 오른쪽을 쳐다보면 낮은 산이 하나 있는데 그 산의 모양이 거북이랑 비슷해서 거북산이라고 불렀다. 산에가면 육이오전쟁 때 썼을법한 진지 같은게 제법 있었다. 형과 형친구들을 따라 그 산에 종종 올라가서 놀았는데 진지 안에..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때이다. 장소는 지금의 서울 하일동이다. 하일동에 우리 집이 있었는데 우리집엔 색동이라는 강아지가 살았고 마당이 있었고 양옥식 집이였다. 마당에서 집으로 들어가려면 작은 계단을 올라가야했는데 난간을 미끄럼틀로 이용해 놀았었다. 집 인근에는 배밭같은게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사촌 누나들하고 놀았던 기억이 있고 생생히 남아있는 유일한 기억은 갈색 말 모양의 바퀴달린 탈 것을 힘차게 밀었는데 잘 안나가서 쩔쩔매던 모습이다. 마당에서도 타고 집 밖으로 나가서도 탔는데 집에서 저 멀리 나가면 교회같은 곳이 하나 있었다. 그 곳에 가려면 내리막을 하나 내려가는데 형이 나를 그 곳으로 데려가서 그 말을 내려주곤 했다. 나는 그게 아주 신나고 재밌었다. 어느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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