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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갔던 초등학교(당시엔 국민학교)는 풍납초등학교였다. 우리집은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경당빌라였다. 걸어서 5분정도?의 짧은 거리였지만 내겐 좀 멀었던 거리로 기억한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여자선생님이였고 짝꿍도 여자애였다. 짝꿍의 이름은 오뭐뭐였는데 성이 오씨였던것만 기억난다. 난 수업에 들어가서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늘 창문밖을 쳐다봤다.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짝꿍인 오뭐뭐가 왜 자꾸 자기 책상 보냐고 핀잔을 주곤했다. 나는 늘 별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반항을 하지 않았다. 오뭐뭐는 심지어 책상 금을 넘어오지 말라고 내게 화를 내곤했다. 역시 난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해오라는 숙제는 해가본 적이 없으며 역시 시험을 보면 늘 0점이였다. 받아쓰기 역시 ㅎㅎ 늘 0점이였다.


1학년과 2학년은 하루에 네시간 밖에 수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전반과 오후반이 있었다. 오전반 수업이 끝나면 난 가방을 들고 주변 동네를 구경다녔다. 저저저저저 멀리 떨어진 초등학교에 구경가기도 하고 조금 멀리 걸어 천호대교를 건넜다가 돌아오기도했다. 공부하는 것이나 숙제같은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그냥 돌아다니며 생각하고 상상하고를 반복했다.


친구는 단 한명이 있었는데 이름은 김지네였다. 남자애였는데 발음이 김지네고 본명이 아마도 김진애인가... 뭐 여튼 발음이 지네라서 난 그냥 김지네만 기억난다. 조용히 가만히 있는 나에게 인사를 걸어주고 같이 다녀준 유일한 친구였다. 내가 한번 이친구의 집에 놀러간적이 있는데 걔네 어머니께서 라면을 끓여줬었다. 그 맛은.. 짜고.. 뿔고.......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였는데 여튼 내 인생에 있어서 최초의 친구집 찾아간 기억이다.


학교 정문쪽에는 큰 나무가 있었는데 봄이였나? 쯤엔 송충이가 많았다. 난 그게 징그러워서 정문 근처에서 앉아있길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마 반의 남자애들은 그게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걸 잎에 올려놓고 여자애들에게 들고 다니며 놀리기 바빴다. 물론 난 그게 싫어서 저 멀리 멀리에 혼자 앉아있었다.


나의 짝꿍 오뭐뭐. 얘는 늘 나에게 핀잔주기에 바빴다.넌 왜 숙제를 안하니 넌 왜 공부를 안하니 넌 왜 내 책상을 쳐다보니 넌 왜 내 공책을 보니 넌 왜 책상을 넘어오니 넌 왜 아무말을 안하니 넌 왜 넌 왜 넌 왜 넌 왜. 오뭐뭐는 결국 2학년 올라갈 때 그녀의 진심을 내게 말해줬다. 내가 너를 자꾸 혼내는건 니가 마땅한 반응을 안해서 답답해서 그러는 거라고. 앞으로 2학년 올라가면 친구들이랑 얘기 좀 하고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얘기하라고.. 그런 말을 해줬다. 뭐 물론 난 들은 척도 안했지만. 내게 있어서 짝꿍이 어떤 아이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첫 짝꿍의 성격이 워낙에 강했기에 2학년 때의 짝꿍은 그렇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이건 들은 얘긴데 초1 때 담임선생님이 우리 부모님을 학교로 불러서 종수를 유급시키자고 했었다고 한다.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만 한 것이 얘가 공부도 안하고 숙제도 안해오고 시험도 늘 0점이고 친구도 없고 말도 없고 수업 시간에 먼 하늘만 쳐다보니 그럴만도 했다. 그 때 엄마는 나를 유급시키는데 동의했지만 아빠는 무슨소리냐고 얘는 천재라며 그냥 다니게 하자고 우기셨다고 한다. 결론부터 놓고보면 그냥 다니게한 것이 지금의 내가 있도록 해준거겠지.